■ 즉위 이전
□ 8세기 중반 이후 동아시아
▶ 당은 안사의 난(755~763)
이후 국력이 약화하여 적극적인 대외 개입이 어려워졌고, 신라 역시
혜공왕 즉위 이후(763 >)
귀족들의 반란이 연이어 발생하며 정치적 혼란에 빠졌음.
- 이러한
상황 속에서 흑수말갈은 당과의 연합과 말갈 세력 규합을 통해 발해의
북방과 후방을 지속적으로 위협하였음.
▶ 이에 발해는 흑수말갈을 최대 위협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
한편, 서쪽의 당과 남쪽의 신라와는 충돌을 최소화하는 안정적인 외교
관계를 유지하였음.
□ 발해의 정치적 혼란기
▶ 793 제3대 문왕이
세상을 떠나자 친척 동생인 대원의가 즉위하였으나, 같은 해 폐위됨.
▶ 793
이후 문왕의 손자인 제5대 성왕이 즉위하였으나,
▶ 794
병으로 세상을 떠나고, 다시 문왕의 작은아들이 제6대 강왕으로
즉위하였음.
▶ 809
강왕이 사망한 뒤에는 그의 아들 제7대 정왕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나,
▶ 812
정왕 역시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, 그 뒤를 이어 동생 제8대 희왕이
즉위하였음.
▶ 817
이후 희왕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, 또 다른 동생인 제9대 간왕이
왕위에 오름.
■ 재위 기간
▶ 818년 간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,
대조영
동생(대야발)의 4대손인 선왕이 즉위함.
↘ 선왕은 방계 왕족으로서 전통적인 왕위 계승
원칙상 정당성이 약했으나, 즉위 이전부터 말갈 정벌을 주도(또는
참여)하여 국력과 안보를 강화한 성과를 바탕으로 정치적 지지를
확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이해됨.
- 당과의 빈번한 사신 교류를 통해 국제적 위상을
공고히 하고, 일본과는 정치·경제적 필요에 따른 실리 외교를
전개하였음.
□ 최대 영토 확보
▶ < 820(?) 발해는 사실상 대부분의 말갈 세력을 복속시키는 데 성공하는
한편, 신라에 대한 군사 행동도 병행함으로써 최대 영토를
확보하였음.
- 발해의 영토는 동쪽으로 연해주(지금의 러시아
프리모르스키 변경주)에 이르고, 서쪽으로는 말갈 세력을 복속하며
요동(중국 요하의 동쪽)까지 확장되었으며, 남쪽으로는 대동강(지금의
평양시를 관통하는 강)과 원산만(지금의 북한 강원도 원산)을 경계로
신라와 맞닿아 있었음.
▶ 이후 발해는 5경 15부 62주 편제를 정비하여 확대된 국토를
체계적으로 관리하고, 장기간의 정치적 혼란으로 약화되었던 지방
통제를 강화함으로써 국가 운영 체제를 제도적으로
완성함.
↘ 당에서 “해동성국(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)”이라
부름
■ 사후
▶ 830년
선왕이 세상을 떠나고, 손자인 대이진이 즉위함.